더 나은 삶을 위해/독서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와 "인어가 잠든 집"

흰쩜오 2019. 5. 12. 23:29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를 읽기 시작한지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실제로 암투병하다가 작년에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암투병 중에 썼다는 책.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겪은 일들, 암투병 중에 겪은 일들, 예를 들어 선고를 받고 다양한 치료를 시도하면서 수시로 바뀌는 암,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죽고 난 후 남을 남편과 딸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들... 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써놓은 책이다.



이 책은 뭐랄까? 정말 꾸밈없는, 솔직한 암투병 환자의 속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희망을 가졌다가도 악화되는 현실에 분노하고 그러다가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치료에 임하고... 또 좌절하고...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데에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 전문적인 용어들도 한몫한 것 같다.

그렇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정말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누가 4기 말기 암선고를 받고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남은 생마저 낭비하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도 쉽지 않을 터이다. 그런 암환자의 심리변화를 투명하개 표현한 듯 하다.

책에는 저자가 사랑하는 딸들을 위해 책을 쓴다고 여러 번 얘기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이 책이 딸들과 남편을 위해서만 썼을까? 혼란스럽고 좌절밖에 없는 여생을 정리하면서, 본인의 죽음 후에 남겨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데에 글을 쓰는게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시력장애를 가졌고 미국에서 이민자 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변호사까지 하고 멋진 남편을 만나 사랑스러운 두 딸을 낳고 결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저자. 정말 어떻게 그녀의 삶은 저렇게 순탄하지 않았을까? 어릴 때 나는 불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위 친구들만큼 행복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내면서 나 스스로를 동정했다.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를 읽으면서 이게 정말일까 싶은 생각도 들면서 나는 이 정도면 정말 행복하게 살았구나 싶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얘기했듯이 정말 본인 삶에 감사하고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의 조금 남은 부분들을 아침에 마저 읽고, 다음으로 읽기 시작한건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어가 잠든 집"이다.
자기계발서나 인문 서적을 읽으려다가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가 내게는 조금 힘든 책이었기에 가볍게 읽고자 소설을 읽기로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 네 번째로 읽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오늘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500페이지가 넘을 것 같은 두꺼운 책인데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중독성이 있는건지 쉽게 써놨는지 빨리 읽히는 편인 것 같다.

그런데 다 읽고 보니 이게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다 읽은 두 책 모두 죽음에 관한, 어찌보면 우울한 주제를 다룬 책들이었다.

"인어가 잠든 집"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들에 비하면 큰 반전은 없는 책이었다. 내심 어떤 반전이 나올까 기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반전이 나오면 히가시노 게이고를 식상한 작가라고 비판할 것도 같았다.

"인어가 잠든 집"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가 말하려는건 뭘까? 뇌사판정이라는 애매한 죽음 선고를 짚으려는 걸까?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을 표현하려는 걸까?
나는 읽으면서 전자에 비중이 더 있는 것 같다. 한국은 현재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어가 잠든 집"에서는 일본에서의 뇌사판정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 꽤 있다. 죽은거라고 할 수 있냐? 절차에 따라 현재는 판단을 못 한다는 의사에 말에 그러면 살아있는거냐고 재차 확인하는 부분들.. 그리고 하나 기억에 남는건.. 뇌사라는게 애매한 정의라는 의사의 소견. 아직 과학적으로 뇌의 기능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뇌가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걸 뇌사라고 한다는게 모순이 있다라고... 게다가 뇌사라는게 장기 이식을 위해 정의된거라는... 살아있는 사람한테서 장기를 적출할 수 없고 사람이 죽으면 장기를 적출해봤자 이식을 못 하고... 그러니 죽었다고 가정하기 위한 개념이 뇌사라고....

분홍색 표지에 "인어가 잠든 집"이라는 제목은 이 책이 상당히 판타지 성향에 동화같은 책일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읽어보니 단순히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닌거 같다.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네 권 중 순위를 매긴다면 세 번째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