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해/독서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흰쩜오 2019. 4. 2. 00:16
얼마 전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난 후 구매한 파울로 코엘료의 책 두 권 중 첫 번째.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연금술사’에 비하면 얇은 책이지만 읽기 어려웠다.
특히나 중반은 내가 뭘 읽고 있는지 집중도 잘 안 되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건지 모르겠고...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었다. 후반부에 가서야 ‘아, 이런 의미인가?’, ‘이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이야기를 전개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의도와 문학적 소견은 모르겠다. 다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한가지는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과 같은 맥락이라서 조금 놀랐다.



사람은 죽음을 지각한 후 삶의 태도가 바뀐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을 잠깐 하자면 베로니카라는 주인공은 자살을 시도했다가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수면제로 인해 심장이 다쳐서 일주일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는다.

선고를 받고 난 후 베로니카의 심경은 여러 번 바뀐다. 처음에는 자살이 실패했고 일주일을 더 살게 되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이 있는 곳은 정신병원... 자살을 시도했다고 해서 정신병원이라...
그리고 그 일주일을 죽음을 기다리면서 지내게 되고....
그 일주일도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자아 실현’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서 더 살고 싶어지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에도 결국에는 더 살고 싶어한다. 그리고 룰 또는 금기라는 것 때문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게 된다.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더라도 암 선고를 받거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처음에는 그 충격에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어찌보면 남은 인생을 허무하게 보내다가 정말 얼마 남지 않게 되면 인생의 다른 면을 깨닫게 되고 더 살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현실과는 괴리가 있을테고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그 입장이라면 똑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어디선가... 아마도 어느 자기계발서같은... 사람들에게 가끔 유서를 써보라고 했다. 사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길가다가 묻지마 살인을 당한다거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어이없이 차에 치여 죽거나, 운전을 하다가 트럭이 들이받아서 죽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추락하거나... 뉴스를 보다보면 정말 겁이 나서 운전도 못 하겠고 외출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유서를 쓰라는 것은 사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대비하라는 의미이기 보다는 가끔 유서를 쓰게 되면 하루하루 인생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고 삶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보게 함이 목적이다.


정말 내가 내일 당장 죽어야 된다면 나는 오늘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낼 수 있을까? 내게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보내거나, 정말 뭔가 금기시되어 내가 못 해봤던 것을 해보는 등 일분일초가 아깝지 않도록 보내겠지...






대다수와 다르면 난 잘못된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이거인 것 같다.
정신병원... 소설 속에 나오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정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무리 또는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졌거나 다른 행동을 한다고 해서 입원한 인물들이 나온다. 본인의 자아가 확실하여 다른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하려다가 입원한... 또는 본인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어 입원한 사람들...
그리고 책에는 어떤 룰에 금기시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반적, 상식적, ...
이런 단어들이 자꾸 신경쓰인다. 그리고 개념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과연 이런 말들이 의미하는건 뭘까?
어떤 단체 또는 공동체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것들...
그런 것들이 일반적인게 되고 상식적인게 되고 규칙이 되고 법이 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면 사회생활을 못 하느니 개념이 없다느니...

물론, 인간이라는 존재는 혼자 살 수 없고 공동체 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학생 때 배웠고 경험으로도 알고 있고, 공동체 생활을 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것들이 정답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요즘 ‘다름’을 인정해야 된다는 운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노력들이 많아지고 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라는 단체에서 ‘다름’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 경계가 애매하다. 어떤 것은 규칙이고 일반적이고 상식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고 어떤 것은 ‘다름’으로 인정되고... ‘다름’으로 다 인정해버리면 회사 운영이 안 될 것이고 요즘 세상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보수적 회사라는 소리를 들으니...

단지 회사만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 셋만 모여도 한 사람 바보만들고 따돌림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세 사람이 아니라 연인 사이에서도 많은 다툼의 원인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 틀리다고 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공동체생활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나’를 버리고 공동체로 완전흡수가 되느냐, 그래도 내 인생인데 나라는 인격체를 어찌 버리고 남들 비위에 맞춰야 하냐....


참, 어려운 주제이다. 어떻게 글을 쓸까 고민을 해봤는데 도저히 정리가 되지 않아 그냥 생각나는대로 끄적여본다.